침략과 저항의 천년: 한일관계사를 돌아보다.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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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ocument examines a thousand years of invasions and resistance in the history of Korean-Japanese relations. It discusses historical events like Waegu invasions, Imjin War, and highlights key figures and turning points that shaped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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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과 저항의 천년, 한일관계사를 돌아보다. ` 신발도 제대로 갖추어 신지 못한 왜. 왜라는 이름은 아주 오래된 이름.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중반부터 사용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왜라고 계속 부름 임나일본부설은 완전한 허구 그럴 능력도 힘도 없다. 오히려 일본 왕족 백제 기원설 백제가 신라, 당나라...
침략과 저항의 천년, 한일관계사를 돌아보다. ` 신발도 제대로 갖추어 신지 못한 왜. 왜라는 이름은 아주 오래된 이름. 일본이라는 국호는 8세기 중반부터 사용 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왜라고 계속 부름 임나일본부설은 완전한 허구 그럴 능력도 힘도 없다. 오히려 일본 왕족 백제 기원설 백제가 신라, 당나라 연합군에 망할 때 대규모 구원병 왜구(倭寇) 1223년(고종 10) 왜구가 경상도 김해 침입 몽골과 전쟁 중이던 때를 틈타 노략질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이 일본 침공 이후 약 80여년 간 왜구 소강 상태 14세기 중반부터 왜구 출몰 빈번 1375년(우왕 1) 최영의 홍산대첩 1380년(우왕 6) 왜구 500여척을 금강 하구 에서 나세, 최무선이 격퇴한 진포대첩 1380년(우왕 6) 이성계의 황산대첩 1389년(창왕 1) 박위가 병선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 왜선 300척 불태우고 포로 귀환 1396년(태조 5) 김사형이 대마도 정벌 1419년(세종 1) 이종무가 병선 227척, 병사 1만, 7천명으로 대마도 정벌 “벌레 같은 섬땅의 도적이 험한 길을 믿고서, 우리의 은덕 을 모른 체하고 우리의 변방을 못살게 구니, 분노를 일으 키어 정벌을 명하셨네. (중략) 무수한 깃발이 해를 가리니 왜국이 벌벌 떨도다. (중략) 소굴을 쳐부수고 보금자리 뒤 엎으니, 활활 타는 큰 불길에 새털 하나 타듯 하고, 고래를 무찔러도 물결 하나 일지 않네. 백성을 안유하니 나라가 편하도다.”( 29년 6월 4일 을축) “예로부터 개돼지 같은 자들에게는 만족이 없는 법이어서 한 가지를 얻게 되면 또 한 가지를 요구하기 마련입니 다.”( 38년 5월 15일 무자) 1510년(중종 5) 삼포(부산포, 내이포, 염포)왜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도요토미 히데요시 고니시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모리, 시마즈 후쿠시마 고바야가와 모리 우키다 하시바 1만 8,700명 2만 2,800명 1만 1,000명 1만 4,000명 2만 5,000명 1만 5,000명 3만명 1만명 1만 1,500명 총 15만 8,700명의 육군 병력 출정 수군 9,000명 해전 대비 구니베 등이 이끄는 1만 2,000명 후방 경비 총 병력 30여 만명 중 약 10만명은 나고야에 대기, 3만명 수도 경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과 세키가하라 전투 도쿠카와 이에야스 VS 모리 데루모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본 지배 모리 패배 뒤 야마구치현(조슈) 할당 200년 에도 시대 개막 사무라이, 평화로 전공을 쌓을 기회 상실 칼을 찬 이서로서 가업 충실(경비, 회계) 유학에 눈을 뜬 사무라이, 칼 찬 사대부 신분 극복을 위해 조직화 18세기 후반 교육 시설 급증 사무라이들은 스승과 제자 관계 맺으며 정치세력화 이때까지 발언권이 없던 하급 무사들 새 나라의 비전과 현재의 문제 적극 제기 19세기 조선을 정벌하자는 정한론의 대두 1854년 페리 제독의 에도만 시위로 일본 은 미국과 조약 체결 요시다 쇼인은 밀항 실패 뒤 유폐 만주, 연해주, 북해도, 대만, 필리핀 등을 모두 정벌하여 미국같은 강대국 구상 쇼인은 존왕양이 주장 쇼인이 사형 당한 뒤 메이지유신 성공 조슈번 사쓰마번의 동맹으로 막부 타도 메이지시대에서 쇼인은 영웅 쇼인의 구상이 실현되는 세상 정한론이 실제 추진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토 히로부미 동학군 학살 때 일본 총리 남한폭도대토벌 작전 때 한국 통감 안중근에 의해 저격 사망 야마가타 아리토모 일본 초대 총리 청일전쟁 때 조선주둔 사령관 아시아 팽창주의의 선봉 이토 히로부미 암살 뒤 독재 권력 미우라 고로 가쓰라 타로 미우라 고로 명성황후 시해 뒤 시신 불태운 범인 1895년 주한공사로 부임하여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 일본군, 경찰, 낭인 동원 명성황후 시해 가쓰라 타로 한일강제병합 당시 일본 총리 일본 최장 기간 총리 2,886일 의병 갑오의병 – 경복궁 칩임 을미의병 –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 을사의병- 러일전쟁 뒤 외교권 박탈 정미의병 - 군대해산 남한폭도대토벌 작전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영국 데일리 메일의 종군기자 멕켄지 인터뷰 내용 오시마 요시마사 데라우치 마사타케 오시마 요시마사 아베의 고조부 1894년 6월 21일 경복궁 점령 청일전쟁의 전초 기지로 조선 이용 데라우치 마사타케 대한 제국 통감으로 대한제국 병합 강행 초대 조선 총독으로 헌병 무단 통치 폭압적 한국 지배 삼일운동 기시 노부시케 사토 에이사쿠 기시 노부시케 아베의 외조부, 아베 신타로의 장인 A급 전범, 만주국의 실질적 지배자 자민당 창당 뒤 초대 간사장, 총리 사토 에이사쿠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 7년 8개월 집권, 전체 2위 기록 오키나와 반환, 핵무기 퇴출, 노벨평화상 도공 심수관의 14대 후손과의 인연 아베 신조 일본 최장기 총리, 6연속 선거 승리 1993년 아버지 지역구인 야마구치현에 출마해 당선, 국회 입성 일본 헌법 개정 추진 전쟁 수행이 가능한 국가를 목표 일본 헌법 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 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에 의거한 전쟁 및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 를 포기한다.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및 그 이외의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