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기말 한국사 부교재 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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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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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Social Studies History of Korea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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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document summarizes the key aspects of Korean history, highlighting social, cultural, and political developments. The content details historical periods, including societal transformations, cultural movements, and nationalist efforts of the time. It also discusses the challenges and movements during this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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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사회·문화의 변호와 사회 운동 1. 사회 모습의 변화 ▶ 식민지 도시화가 진행되다 · 근대 도시의 발달 : 일제의 경제 침략과 식민지배 정책에 따라 도시화 진전 - 개항 후 : 서울, 평양, 개항장과 철도·항만 건설에 따라 신흥 도시 성장 - 일제강점기 a. 식민지 공업화 추진 → 함흥, 청진 등 북부 지방에 공업 도시...

04. 사회·문화의 변호와 사회 운동 1. 사회 모습의 변화 ▶ 식민지 도시화가 진행되다 · 근대 도시의 발달 : 일제의 경제 침략과 식민지배 정책에 따라 도시화 진전 - 개항 후 : 서울, 평양, 개항장과 철도·항만 건설에 따라 신흥 도시 성장 - 일제강점기 a. 식민지 공업화 추진 → 함흥, 청진 등 북부 지방에 공업 도시 성장, 대도시 인구 증가 b. 전통 도시(경주, 공주, 개성 등) : 식민지 지배 정책에서 소외 → 상대적으로 성장 지연 c.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라 도시화 전개 · 도시의 변화 - 중심지 : 새로운 시가지 형성 → 일본인이 시가지 중심 차지 - 변두리 : 빈민층 거주하는 토막 증가 ▶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중문화가 유행하다 · 형성 : 1920~1930년대 서양 문화 유입 → 도시 중심 유행 · 내용 - 신문 : 문화행사, 스포츠 등 소개 / 잡지 : 패션, 화장법 등 소개 - 영화 상영, 백화점 영업, 다방 카페 등장 등 · 특징 : 모던 보이, 모던 걸 등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소비 문화 ▶ 도시 빈민과 몰락해가는 농민의 삶 · 도시 빈민 - 형성 : 식민지 공업화 → 도시화 진전 → 노동자 증가 → 상당수가 도시 빈민층 형성 - 생활 : 변두리 토막에 거주,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 · 몰락 농민 - 배경 : 식민지 수탈 정책 → 일본 토지 회사, 소수 대지주에 토지 집중 - 농민층 분해 a. 자작농 & 자소작농 수 ↓, 소작농 크게 ↑ b. 소작농 화전민 or 도시빈민화, 만주·연해주·일본으로 이주하는 농민 ↑ - 농촌 진흥 운동 a. 배경 : 대공황 이후 농민층 몰락, 소작 쟁의 격화 b. 목적 : 농촌 통제, 식민지 체제 안정 c. 방식 : 빈곤 책임 농민에게 전가, 근면·절약 강조하는 정신운동으로 추진 2.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려는 움직임 ▶ 여성의 지위 향상을 추구하다 · 배경 : 여성의 사회진출 활발, 여성 노동자 수 증가, 여전히 열악한 여성의 지위 · 여성 운동의 전개 - ‘신여성’ 등장 → 여성 인권 신장 & 양성 평등 주장 - 여성 운동 단체 조직 → 여성 계몽, 여성 차별 철폐 등 주장 · 근무회 (1927) - 신간회 자매단체, 여성계 민족 유일당 - 강령 : 조선 여자의 공고한 단결을 도모함,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을 도모함 등 - 활동 : 국내외 지회 설치, 강연회, 부인 강좌, 야학 등 → 노동 여성 조직화, 여성 계몽 도모 ▶ 아이에서 ‘어린이’로, 소년 운동이 일어나다 · 소년운동 : 어린이를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자는 운동 · 배경 : 어린이의 열악한 지위 (적은 교육 기회,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 전개 - 천도교 소년회 : 방정환 활약, 어린이날 제정, 잡지 ˹어린이˼ 간행 - 소년 운동 확산 → 조선 소년 연합회 결성 (전국적 조지체, 1927) · 탄압 : 1930년대 민족운동으로 간주해 탄압 → 중·일 전쟁 이후 완전히 금지 ▶ 형평 운동, 저울처럼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 · 형평운동 :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 요구 · 배경 - 갑오개혁 → 신분제 X, but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천대 지속 - 일제 : 호적에 붉은 점 등으로 백정 신분 표시 · 전개 - 백정 차별 폐지 요구 - 조선 형평사 창립 (진주, 1923) → 전국 확대 - 다른 사회운동 단체와 연대 → 항일 민족 운동 전개 3. 민족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 일제, 식민사관을 날조하다 · 목적 : 한국 강점과 식민 통치의 합리화 · 식민 사관 - 한국사 왜곡 → 자율적·주체적 발전 부정 - 타율성론 : 한국사는 외세에 의해 타율적으로 움직여 왔다는 주장 - 정체성론 : 한국사에 중세 봉건 사회 X → 스스로 자본주의적 근대 사회로의 발전 불가능 ▶ 한국사 연구 · 민족주의 사학 - 자주적 민족사 연구, 민족정신 강조 - 박은식 : ‘조선 국혼’ 강조,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 신채호 : 사대주의 비판, 민족 중심 자주적 역사관 수립 강조 고대사 연구에 주력 →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 1930년대 중반 조선학 운동 전개 · 사회경제 사학 - 유물사관의 영향 - 백남운 : ˹조선사회경제사˼ → 정체성론 비판 · 실증 사학 : 진단 학회 조직, 문헌 고증 통해 객관적 역사 서술 ▶ 국어 연구, 언론·교육활동 · 조선어 연구회 (1921) : 가갸날 (한글날) 제정, 잡지 ˹한글˼ 간행 · 조선어 학회 (1931) : 한글 표준화에 기여,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주력 → 조선어 학회 사건 (1942)으로 탄압 · 언론 활동 : 3·1운동 이후 신문 & 잡지 발생 → 새로운 사상 전파, 문화 발전에 기여 · 교육 활동 : 사립 학교, 개량 서당 등 설립 (민족 교육 담당), 1920년대 야학 활성화 ▶ 종교계, 민족 운동에 나서다 · 대종교 : 단군 신앙 전파, 종단 중앙기구 간도 이동, 무장투쟁 (중광단) · 천도교 : 제2의 독립선언 운동 계획 (1922), ˹개벽˼, ˹신여성˼ 등 잡지 발간 · 불교 : 한용운 → 불교 대중화 노력, 조선 불교 유신회 조직 (불교 통제에 저항) · 개신교 : 교육·의료 사업, 신사 참배 거부 운동 (주기철 목사 순교 등) · 천주교 : 각종 사회사업 (보육원, 양로원 등), 의민단 조직 (항일 무장 투쟁 전개) · 원불교 : 박중빈 창시, 허례 폐지, 근검절약, 협동 단결 등 ‘새 생활 운동’ 전개 05. 전시 동원 체제와 민중의 삶 2. 민족 말살 통치와 전시 동원 체제 ▶ 황국 신민화를 내세워 민족 말살 통치를 실시하다 · 배경 : 일제의 침략 전쟁 확대 · 의도 - ‘내선일체’, ‘일선동조론’ → 황국 신민화 정책 강요 - 한국인 민족의식 말살, 저항 억제, 침략 전쟁에 효율적 동원 · 민족 말살 정책 - 황국 신민 서사 암송 및 신사 참배 강요 - 한국어 사용 금지, 조선어 과목 폐지, 소학교 → 국민학교 - 창씨개명 강요 ▶ 억압과 통제를 강화하다 · 언론·학술 단체 해산 : ˹조선일보˼, ˹동아일보˼ 폐간, 조선어 학회 사건 (1942) · 조선 사상범 예방 구금령 제정 : 형기 마친 독립운동가 재구금 → 독립운동 탄압 목적 ▶ 군수 물자를 공급하는 병참 기지화 정책을 추진하다 · 식민지 공업화 - 식민지 경제 정책 변화 : 식량 안정적 확보 → 대공황 → 공업화 추진 - 일본 독접 자본 대거 진출 : 한국의 값싼 노동력 & 지하자원 수탈 목적 중화학 공업 & 광업 투자 → 북부 지방 중심 대규모 공장 설립 · 농촌 : 남면북양 정책 실시, 산미증식계획 STOP · 병참기지화 정책 - 배경 : 중·일 전쟁 → 대륙침략 위한 군수 물자 보급 필요 - 한반도 경제 구조 : 군수 산업 위주 개편, 소비재 생산 크게 위축 등 ▶ 전시 동원 체제 속에서 인력과 물자를 수탈당하다 · 국가 총동원법 제정 (1938) : 직접적·강제적 방식으로 인력·물자 수탈 시작 - 인력 수탈 : 지원병제, 학도 지원병제, 징병제 등 → 청년들을 침략전쟁에 투입 국민 징용령, 여자 정신 근로령, 근로 보국대 등 → 노동력 착취 위안부 → 여성 성노예화 - 물자 수탈 : 공출제, 양곡 배급제 등 ·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 - 목적 : 전쟁에 필요한 인력 & 물자 효율적 동원 - 지원병, 국방헌금 독려, 일본식 성명 사용 강요, 반상회 조직 등 3. 친일 반민족 행위자, 그들은 누구인가? ▶ 친일 반민족 행위자의 유형 · 친일 매국노 : 을사오적 등 일제의 한국 강점 과정에 적극 협력한 자 · 일제 통치에 적극 협력 : 고위 관료, 경찰, 군인 등 권력 기구에 종사, 일제의 하수인 → 광복 후 요직에서 활동 · 일제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 - 식민지 경제 체제 아래에서 성장한 자본가 및 지주, 교육자, 종교인 등 지식인 포함 - 중·일 전쟁 이후 친일 단체 간부 등으로 활동 - 전시 동원 체제 적극 협력 : 국방헌금 납부, 학도병 지원 권유 등 - 독립운동가 출신, 여러 분야의 명망가 多 → 대중에게 미치는 악영향 큼 내선일체 (內鮮一體)는 반도 통치의 최고 목표이다. 내선일체는 서로 손을 잡는다 징병제와 반도 여성의 각오 든가, 형태가 융합한다든가 하는 그런 미적지근한 것이 아니다......형태도, 마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지금까지 우 음도, 피도, 육체도 모두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리는 나라를 위하여 귀한 아들을 전장으로 보내는 내지 (內地, 일본)의 어머니들을 - 미나미 지로, ˹조선에서의 국민정신 총동원˼ (1939) -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일제로 내 아들이나 남편을 나라에 바쳐 보 지 못한 우리에게는 대단히 막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웃음으로 내 나는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신념을 가진다. 즉 조선인은 전혀 조선인인 것을 잊어야 아들이나 남편을 전장으로 보낼 각오를 가져야 한다......이제 진정한 황국 신 한다고, 아주 피와 살과 뼈가 일본인이 되어 버려야 한다고. 이것에 진정으로 조 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선인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고. - 김활란, ˹신시대˼ (1942.12.) - - 이광수, ˹심적 신체제와 조선 문화의 진로˼ (1940.9.12.) - 06. 광복을 위한 노력 1. 한·중 연대와 민족 통일 전선 형성 노력 ▶ 한인 애국단, 항일 투쟁에 활기를 불어넣다 · 배경 : 중국 내 독립운동 침체, 중국 내 반한 감정 고조 → 항일 투쟁의 안정적 기반 확보 위해 중국과 연대 필요성 ↑ · 활동 - 김구 책임 아래 조직 (1931) - 이봉창 의거 (1932.1.) → 상하이 사변 → 윤봉길 의거 (1932.4.) · 의의 : 중국 내 반한 감정 완화, 중국 국민당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 적극 지원 → 한·중 연대 항일 전선 구축 계기 마련 ▶ 민족 혁명당 주도로 조선 의용대가 조직되다 · 배경 - 윤봉길 의거 이후 일제의 독립운동가 탄압 강화 → 상하이 out - 투쟁 역량 강화 목적 → 항일 전선 통합 노력 전개 · 결성 - 한국 독립당, 의열단, 만주에서 온 민족주의 & 사회주의 정당·단체 연합 → 민족혁명당 결성 (난징, 1935) - 중국 관내 최대 규모 통일 전선 정당 · 한계 - 대한민국 임시 정부 고수파 (김구 등) 처음부터 불참 - 의열단 계열 당권 장악 → 민족주의계 일부 인사 (조소앙, 지청천 등) 탈당 · 조선의용대 창설 (1938) - 배경 : 중·일 전쟁 발발 → 항일 투쟁의 기회로 인식 - 결성 : 민족 혁명당 주도 → 중국 관내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 - 활동 : 중국 국민당 정부 지원 → 일본군에 대한 심리전, 후방 공작 활동 등 - 변화 : 중국 국민당 정부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 → 다수 병력이 화북지방으로 이동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충칭에서 체제를 재정비하고 통일 전선을 형성하다 · 당면 과제 : 한·중 연대 및 항일 세력 투쟁 역량 강화 · 현실 : 이념 & 통합방법 견해 차이 좁히지 못함 → 1930년대 말 민족주의 & 사회주의로 나뉘어 연합단체 형성 · 체제 재정비 - 충칭 정착 (1940), 중국 국민당 정부 지원 → 체제 재정비, 항일 투쟁 역량 강화 - 한국 독립당 결성 (1940), 김구 주석 선출, 한국 광복군 창설, 건국 강령 발표 · 통일 전선 형성 - 배경 : 태평양 전쟁 발발 → 한국 독립 확신 - 조선 의용대 잔여 세력 → 한국 광복군에 합류 -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민족 혁명당 & 사회주의 계열 인사 합류 - 조선 독립 동맹 (화북)과 통일 전선 형성 위해 교섭 → 성사 직전 일제 항복으로 중단 · 외교적 노력 - 미국 동포사회의 애국 단체와 긴밀히 협력 - 연합국에게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한국인을 대표하는 정부로 승인 받기 위한 외교적 노력 전개 2. 광복을 위한 노력과 건국 준비 활동 ▶ 한국 광복군,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다 · 배경 : 태평양 전쟁 발발 (1941.12.) → 임시 정부의 대일 선전 포고, 연합군으로 참전 · 중국 항일 전선에서 심리전 전개해 성과 → 영국군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투입 (1943) · 미국과 협약, 국내 정진군 조직 → 국내 진공작전 계획, but 일제 항복으로 취소 ▶ 화북 지방에서 조선 독립 동맹과 조선 의용군이 활약하다 · 조선 의용대 화북 지대 : 타이항산 중심 활동 → 호가장 전투, 반소탕전 등에서 큰 전과 · 조선 독립 동맹 (1942) -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 + 중국 공산당 소속 한국인 → 위원장 김두봉 - 조선 의용대 화북지대 → 조선 의용군으로 개편 ▶ 만주 일대에서 항일 유격 전쟁을 전개하다 · 조국 광복회 조직 (1936) : 동북 항일 연국 소속 한국인 유격대원 + 함경도 일대 공산주의자, 천도교 · 보천보 전투 (1937) : 항일 유격대 일부가 국내 조국 광복회 지원 아래 보천보에서 경찰 주재소 & 면사무소 공격 · 동북 항일 연군의 변화 : 1940년 경부터 대부분 소련 영토로 이동해 활동 ▶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하다 · 제 2차 세계 대전 발발 → 미주 동포, 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 결성 (1941.4.) · 대한민국 임시 정부 재정 지원, 한인 국방 경위대 (맹호군) 조직 · 외교 위원회 설치 : 미국으로부터 대한민국 임시 정부 승인 받기 위한 외교활동 전개 ▶ 무장봉기론의 대두와 조선 건국 동맹의 결성 · 무장봉기론 대두 : 일제 패망 & 한반도 독립 확신 → 비밀 결사 조직, 무장 봉기 준비 · 조선 건국 동맹 결성 (1944) - 여운형 주도로 비밀리에 조직 : 민족주의 + 사회주의 - 중앙·지방 10여 지역에 체계적 조직 구성 - 조선 독립 동맹에 연락원 파견 → 조선의용군과 협동 작전 계획 - 광복 직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로 발전 ▶ 연합국,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다 · 카이로 선언 (1943.12.) :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을 자유 독립하게 할 것을 결정한다.” → 최초로 독립 약속 · 얄타 회담 (1945.2.) : 미·영·소, 비밀 협정 체결 (대독전 종료 후 3개월 이내 소련이 대일전 참전) · 포츠담 선언 (1945.7.) : 미·영·중, 독립 약속 재확인, 일본의 무조건 항복 촉구 · 소련, 일본에 선전 포고, 포츠담 선언에 참여 (1945.8.8.) ▶ 한국인에게 주어진 과제는? · 카이로 선언 & 포츠담 선언의 한반도 독립 약속 → 국내외 끊임없이 전개된 한국인의 독립투쟁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 · 카이로 선언 : “적절한 절차를 걸쳐” → 일제 항복 이후 한국 문제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처리하려 함 · 미국 : 종전 후 한반도 신탁 통치 구상 → 한반도 내 소련 세력 확대 견제, 미국 영향력 확대 목적 ·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 쟁취 X → 연합국 영향 받을 수 밖에 없었음 · 강대국 이해관계를 능동적으로 조정 → 독립운동가와 민족 구성원 다수의 의지가 반영된 새 국가 건설 대한민국 임시 정부 건국 강령 (1941) 제 3장 건국 삼균(三均) 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실시하여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며,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 기관의 국유가 완성되고 전국 학령 아동 전체에 대한 고급의 무상 교육이 완성되고 보통 선거 제도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어.....국민 계급의 물질과 정신상 생활 정도와 문화 수준이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의 제2기라 함. - 국사편찬위원회,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 - 조선 독립 동맹 강령 (1942) 본 동맹은 조선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전복하고 독립 자유의 조선 민주 공화국을 수립할 목적으로 다음 임무를 실현하기 위하여 싸운다. 1. 전 국민의 보통 선거에 의한 민주 정권을 수립한다. 6. 조선에 있는 일본 제국주의자의 일체 자산 및 토지를 몰수하고 일본 제국주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대기업을 국영으로 귀속하며 토지 분배를 실행한다. 9. 국민 의무 교육 제도를 실시하고 이에 필요한 경비는 국가가 부담한다. - ˹진찰기일보˼, 1942.8.25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강령 (1945) · 우리는 완전한 독립 국가 건설을 기함. ·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본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족주의 정권 수립을 기함. ·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 생활의 확보를 기함. - ˹매일신보˼, 1945.9.3 - IV. 대한민국의 발전 01. 8·15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2. 광복과 국토의 분단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다 · 광복의 의미 - 독립운동 전개의 결과 → 연합국의 독립 약속 (카이로 선언, 포츠담 선언) - 연합국 승리의 결과 → 향후 미·소의 결정이 한국의 진로에 영향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 결성 : 조선 총독부가 여운형과 행정권 이양 교섭 → 정치활동 불간섭 등을 약속, 안재홍과 좌우 합작으로 건준 조직 - 활동 : 강령 발표, 전국 각지에 지부 설치, 치안대 조직 → 질서 유지 위해 노력 미·소가 38도선을 경계로 남북 나누어 점령 → 조선 총독부가 행정권 이양 부정, 갈등발생 - 변화 : 좌익이 건준 주도권 장악 → 우익 이탈,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 선포 ▶ 미·소 점령 아래 군정이 실시되다 · 성립 - 소련군 북한 지역 진출 → 미국이 한반도 분할 점령 제안, 소련 수용 - 38도선을 경계로 미·소 군정 실시, 한국의 주권 행사 지연 · 남한(미국) - 직접통치 → 조선 총독부 행정 체제 그대로 활용 (일제 부역자 등용) - 한국인이 조직한 정치조직 (대한민국 임시 정부, 조선 인민 공화국) 부정 · 북한(소련) - 간접통치 → 북한 각 지역 인민 위원회에 행정권 이양 - 민족주의 세력 탄압, 공산주의 세력 후원 → 공산주의 정권 수립 도모 ▶ 모스크바 3국 외무 장관 회의로 남한 정국이 양분되다 · 상황 - 미국에서 이승만 귀국, 임시 정부 지도자 개인자격으로 귀국 - 임시 정부가 독립 국가 건설의 중심이 되고자 함 → but, 미군정 체제 아래 X · 모스크바 3국 외무 장관 회의 (1945.12.) - 회의 내용 : 미·영·소 3국 외무 장관이 한국 문제 논의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설치, 최대 5년간 신탁 통치 결의 - 영향 : 좌·우익의 격렬한 대립 a. 우익 : 신탁통치는 한국인의 자주권 부정 → 반탁 운동 전개 반탁은 애국, 좌익을 매국 세력으로 비판 b. 좌익 : 처음에는 반대 → 신탁 통치를 독립을 위한 지원 방안으로 인식, 회의 결정 지지로 전환 c. 친일 반민족 세력도 반탁 운동에 적극 가담 → 애국 세력으로 변신 도모 3. 통일 정부 수립 운동 ▶ 이승만,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다 · 배경 : 좌우익 대립 격렬, 제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 정읍 발언(1946.6.) : 남한 단독 정부 수립 주장 → 당시만 해도 미·소가 협력해 한반도 문제 해결 시도했기 떄문에 당장 추진 X ▶ 중도파,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하다 · 배경 : 제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단독 정부 수립론 대두 (정읍 발언) · 전개 - 중도파(여운형, 김규식 등) 주도, 미군정 지원 → 좌우 합작 위원회 조직 - 좌우 합작 7원칙 발표 (1946.10.) : 통일 임시 정부 수립, 유상 매상과 무상 분배 원칙으로 토지 개혁 반민족 행위자 처벌 등 → 김구 O, 이승만 ⃤ , 우익 X, 좌익 X ▶ 유엔, 남한 단독 선거를 결의하다 · 배경 - 트루먼 독트린 발표 → 냉전 체제 본격화 - 제 2차 미·소 공동위원회 결렬 - 여운형 암살 → 좌우 합작 운동 사실상 중단 · 전개 ① 미국이 한국 문제 UN에 상정 ② UN :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 한국 정부 수립 결정 ③ UN 한국 임시 위원단 파견 → 소련이 위원단 입북 거부 ④ UN :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총선거 실시 결정 · 반응 : 대부분 반대, but 이승만 & 한국 민주당 적극 환영 ▶ 김구·김규식, 남북 협상에 나서다 · 배경 :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 김구·김규식 등이 통일 정부 수립 추구 · 전개 ① 평양에서 남북 연석 회의(1948.4.) 개최 ② 김구·김규식(남), 김일성·김두봉(북) →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 발표 · 결과 - 남북 각각 단독 정부 수립 추진 세력 있어 통일정부 수립운동 실패 - 정부 수립 이후 통일정부 수립운동 지속 → 김구 암살로 중단 ▶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무장봉기가 일어나다 · 상황 : 남한 단독 선거 실시 결정 → 좌익 세력 주도 아래 총파업, 동맹 휴교 등 치열한 반대 투쟁 전개, 무장봉기 · 제주 4·3 사건 (1948) ① 제주도 3·1절 기념행사 후 시위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경찰이 발포 → 항의 시위 ② 시위자 검거, but 일반인 다수 체포 ③ 제주도 내 좌익 세력 + 일부 주민 무장 봉기 (단독 선거 저지, 통일 정부 수립 주장) ④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탄압 → 5·10 총선거 실시 X, 계엄령 선포 후 무차별 진압 (무고한 양민 다수 학살 등) · 여수·순천 10·19 사건 (1948) ① 정부가 제주 4·3사건 진압 위해 여수에 주둔한 군부대에 출동 명령 ② 부대 내 좌익 세력 : 제주도 출동 반대, 통일 정부 수립 → 무장봉기 후 여수·순천 지역 장악 ③ 정부군이 미국 지원 받아 진압, 수많은 민간인 희생 4. 대한민국 정부 수립 ▶ 5·10 총선거 실시, 헌법 제정, 대한민국 정부 수립 · 5·10 총선거 (1948) - 38도선 이남 지역에서 UN 한국 임시 위원단 감시 아래 최초의 민주적 총선거 실시 -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파 & 좌익 세력 단독 선거 반대 → 선거 불참 - 선거 결과 : 198명의 국회의원 선출 (제주도 2개 선거구 제외) · 헌법 제정 (1948.7.17.) - 국호 대한 민국, 헌법 제정·공포 - 헌법 전문 →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했음을 밝힘 - 민주 공화국 수립, 균등 사회 실현,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청산, 농지 개혁 등 내용 포함 · 정부 수립 (1948.8.15) - 국회에서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선출 - 이승만 : 행정부 구성, 미군정 종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내외 선포 - UN 총회 :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내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 ▶ 친일 반민족 행위자 청산이 좌절되다 · 상황 : 해방 직후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미군정청 통치 정책 (친일 관료, 경찰 등 그대로 기용) 등 → 친일파 청산 즉각 시행 X · 전개 - 제헌 국회 :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 (1948.9.) → 국회 직속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위원회 조직 (1948.9.) - 이승만 정부 방해 : 담화문 발표, 반민법 개정 요구, 경찰의 반민특위 습격, 국화 프락치 사건 등 · 결과 : 반민족 행위 조사, But, 실형 선고받은 자도 대부분 감형·형 집행 정지 → 친일파 청산 좌절, 면죄부 부여 ▶ 광복 이후 경제 상황은 어떠하였을까? · 상황 : 남북 간 경제 상호 보완 관계 붕괴 → 남한 경제 위축, 실업자 대거 발생 · 미군정 대응 - 재정 적자 메우기 위해 화폐 대량 발행 → 물가 폭등 - 미곡 자유화 정책 : 상인 & 지주 매점매석 → 양곡 가격 폭등 - 식량 수집·배급 통제 → 식량 수급 ⃤ , 기근 등 · 결과 : 대구 10·1 사건 발생 등 ▶ 농지 개혁을 실시하다 · 상황 - 일제 강점기로 인해 사회·경제적 모순 심화 → 토지개혁에 대한 요구 ↑ - 미군정청 : 토지 개혁에 소극적, 귀속 농지 유상 매각 (1948) 등 · 전개 - 국회 : ˹농지개혁법˼ 제정 (1949) - 원칙 : 유상 매입, 유상 분배(1950) → 3정보 이상 토지 매입, 농민에게 대가(평년작 1.25배), 5년 균등 상환)받고 분배 · 결과 : 지주 계급 소멸, 대다수 농민이 토지 소유 → 토지 소유 불균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상당 부분 해소 · 한계 : 반민족 행위자 토지 몰수 X, 농지 상환액 부담으로 농지 팔고 다시 소작농이 되기도 함. ▶ 북한 정권이 수립되다 · 광복 이후 북한 - 소련군 → 인민위원회에 행정권 이양, 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 회의 이후 민족주의 세력 억압 등 - 김일성 후원 등 북한 정치에 큰 영향력 행사 · 북한 정권 수립 과정 -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1946.2.) a. 토지 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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