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y

이 문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대한 분석입니다. 그림의 역사적 배경과 미학적 특징,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여러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Full Transcript

01 미스터 리 모나 리자 루브르 박물관 안쪽의 한 전시실에 들어가면 겹겹이 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려고 목 을 길게 빼고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 입니다.〈모나리자〉는 언제부터 유명...

01 미스터 리 모나 리자 루브르 박물관 안쪽의 한 전시실에 들어가면 겹겹이 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려고 목 을 길게 빼고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 입니다.〈모나리자〉는 언제부터 유명했을까요?〈모나리자〉가 제작된 당시에도 지금 같은 대우를 받았 을까요? 무엇이 모나리자를 유명하게 만들었을까요? 사실〈모나리자〉가 지금처럼 유명세를 떨치게 된 것은 최근 백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1911 년 루브르 박물관에서〈모나리자〉가 도난을 당했습니다. 당시 에는 유명 한 작품이 아니 었고,박물관에서 는 작품을 촬영하기 위해 종종 자리를 비워 두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도록 도난당한 사실 도 몰랐다고 합니다. 2 년 후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화상이 이 작품의 화가가 이탈리아사람이니 작품을 이탈리아에 돌 려 보 낸 다 는 내 용 의 편지와 작품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쨌든 모나리자가 없어졌다는 신 문 기사가 나간 후 사람들은〈모나리자〉가 걸려 있었던 빈 공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고,그때부터〈모 나리자〉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정황을 덧붙이자면,당시 유럽에서는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제 1 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려는 당시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서 저널리즘이 팽창하는 시기였던 것입니다.〈모나리자〉의 도난 기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처 럼〈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것은 작품이 가진 본래의 가치 이외 에도 다양한 상황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정황들도〈모나리자〉가 명화가 된 이유를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왜〈모나리자〉를 선택하였는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모나리 자〉의 유명세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던진 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그림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 보겠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과연 모나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 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전해지는데 일반적으로 피렌체의.상인 조콘도의 부인이라고 6 알려져 있습니 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을 보 면서 다 빈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조콘도 부인,사생아로 태어나 항상 그리워했던,어머니 동성 애인,그리고 다 빈치 자신까지 모나리자의 얼굴에서 모 두 읽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수 있습니다. 다 빈치가 인물 의 개성이나 특징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작품의 의도가 다른데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들기 때문입니다. 이제 작품 속 인물의 표현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 습니다. 어떤 여인이 여러분앞에서 모나리자와같은 미 소를 짓고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또 그 미소를 어 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이 모나리자의 미 소에 열광하지만 이것을 미디어의 농간이라고 말하는 ♦ 다 빈치.〈모나리자>. 1503~1506년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도난사 건 전까지는 이 작품이 다 빈치의 대표작도 인기 작품도 아니 었으며,희미한 눈썹과 미소는 손상되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모나리자의 미소가 세월이 만들어낸 우연의 효과라는 주장 은 무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미소는 스푸마토라고 하는 표현 기법으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스푸마토는 서구 회화에서 섬세한 음영법을 일컫는 용어로 이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종종 사 용한 미술기법입니다. 연기라늘 이탈리아어 푸모에서 나온용어로 마치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 연기처 럼 영역의 경계를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드럽고 미묘하게 처리하는 기법입니다. 15세기 초반에 나 타난 기법으로 물체의 윤곽선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대신 색의 농담을 달리하여 여러 겹으로 칠하면서 표현합니다. 바사리는 스푸마토 기법이 다 빈치와 조르조네가 명명한 완벽한 회화 양식의 하나로 당시 에 인물을 표현하는 두드러진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눈썹이나 입술선이 전혀 보이 지 않지만 두툼하게 살이 오른 듯한 입체감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작품 전반에 사용한 섬세한 기법이 모나리자의 미소에 신비감을 더해줍나다. 이제 모나리자의 얼굴 전체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나요? 푹신한 팔걸이의 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것 같습니다. 편안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두 손을 모 은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인물을표현한방식을보면 분명하게 알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모나리자는 모호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7 모나리자는 특정한 인물이라고할수 없을 만큼 이상화한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온 전하게 보여 주면서도 남성스러운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굳게 다물어진 입술에는 기쁨 말고도 무수히 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상반되고 복잡한 요소들을 적절히 조절하 고 조합하여 완전한 조화와균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에 경외감을 갖도록 합니다.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풍기는 미묘한 분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의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 습니다. 모나리 자 는 지 금 어 디 에 있 는 것 일까요? 실내라면 창문 밖으로 이탈리아토스타나 지방의 정 취를 담은 정원이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은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원시 시대의 낯선 자연 풍경 같기도 하고,외부의 빛이 닿지 않는 신비한땅 같기도 합니다. 인물의 왼쪽과 오른쪽을 비교해 보 면 한 장소가 아닌 서로 다른 두 공간을 그린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모나리자 눈이 위치한 부분의 배경 은 서로 어긋나 보이기도 합니 다. 다 빈치는물 결 의 움 직 임 , 동 물 의 구 조 , 태아 의 모 습 , 식 물 의 일 부 분 등 동 식 물 과 자 연 을 수없이 많 이 관찰하고 그렸습니다. 자연의 구조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정확하게 묘사할수 있었던 다 빈치가 자신의 방에 걸어둘 정도로 아끼는 작품의 배경을 왜 이렇게 모호하게 그렸을까요? 모나리자의 뒤로는 험준한 바위산이 보입니다. 짙게 드리워진 안개 속에 구불구불하게 나 있는 길과 멀리 다리 같은 모습 이 보입니다. 나무에 초록빛이 보이지만 계절을 알수 없고 동이 터오는 듯 나무 뒤에서 밝은 빛이 보이 지만화면의 테두리로 갈수록 오히려 어두워집니다. 즉 계절이나 시간을 알수 없는 경치라고 할수 있 습니다. 인물과 풍경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 경계가 모호합니다. 어깨 너머로 구불거리는 길은 시각적으로 모 나리자의 부드러운 옷 주름과 연결되면서 한 화면으로 보입니다. 색감에 있어서도 붉은색의 땅이 소매 의 구릿빛과 연결됩니다. 머리에 쓴 베일로 배경이 투명하게 비치면서 다시 한 번 인물과 배경의 경계 를 모호하게 합니다. 이제 인물과 배경을 분리하지 말고 눈에 초점을 풀어 전체적으로 작품을 바라보시 기 바랍니다. 아마 선과 색들이 하나로 이어져 순환하듯이 보일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적 효과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다 빈치가 실제 풍경이 아닌 자신이 가진 자연에 대한 지식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지질학과 지형학에 조예가 깊었던 자신의 지식을 녹여 자연의 원리를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다빈치는물이 자연을순환하는 요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물의 순환과 생명력에 관심이 있었던 그 는 태아를 스케치하고 물의 움직임들을 관찰하였습니다. 이렇게 인물과 배경을 하나로 살펴보면 모나 리자에게서 특정 인물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다 빈치는 인간과 자연의 근원, 그리고 인간이 알수 없고도달하지 못하는그곳에 대해 말하려고하는데,정작나는‘그래서 이 여인이 누구냐’라고 묻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 빈치는 ‘자연 속에서 인간은 무엇인지’라는 8 질문을 되묻는 것 같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한분석과 해석은 이제 미술사의 영역을 벗어난듯합니다. 이 대중적인 작품을누구 나, 어떤 이야기라 도 공 유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모나리자에 대한 오해와 미스터리를 생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일까요? 〈모나리자〉는 명화의 조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명화를 가장 고귀한 수준의 미적 가치를 제 공하는작품’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문화의 상징’이라는관점에서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처 럼 누 구 나 의 미 만 들기에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다 빈치가 사용한 스푸마토 기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 빈치는 스푸마토 기법으로 선과 색의 경계를 기술적으로 모호 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제의 측면에서도 남성과 여성,원시와 문명 등 고정되지 않는 그 리고 상반되는 무언 가 를 그 렸 습 니 다. 이 처 럼 사 고 의 테 두 리를하나로 규정하지 않을때 상상은 피어납 니다. 최근 다양한분야의 경계를 넘어서는창의적 사고에 대한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모나리자> 를 감상하면서 경계를 허물고 관념을 넘어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 고 미술에 대한 편견과 경계를 버리고 새롭게 자신의 눈으로〈모나리자〉를 만나 보세요. 9 02* 르네상스 최고의 발명< 여러분은 인류의 삶을 바꾼 최고의 발명품을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 겠습니까? 어떤 물건이 인간의 사고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종이나 연필 같은 물건들은 생각을 기록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 터 이런 물건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을까요? 안경이나 나침반, 현미경과 같은 것은 잘 알려 졌듯르네 상 스 시 기 에 대 거 발 명 되 었 습 니 다. 15 세 기 초 피 렌 체 의 브루넬레스키는 2 세기 로마의 판테온 이후 천 년 이상 사라졌던 돔 건축을 완성합니다. 기둥이나 받침대 없이 지붕을 둥글게 건축하려면 매 우 어 려 운 기 술 문 제 를 해 결 해 야 했 습 니 다. 시 력 이 나 쁜 사 람 들 을 위 한 렌 즈 는 1450 년 경 부 터 사 용 한 기 록이 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것은 1455 년경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아쇠가 있는 총을 발명한 것은 1475 년 정도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비치가 낙하산 같은 기구를 생각해 낸 것은 1485 년,그 의 노트에 날수 있는 비행 물체를 그린 것은 1492 년입니다. 1565 년에는 연필이 발명되었고, 1569 년에 는 둥근 지도를 평면으로 펼친 메르카토르의 지도가 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1590 년에는 현미경이 발 명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중세 시대에는 중국에서 발명한 물건을 제외하면 주목할 만한 발명품은 없습니다. 일반적 으로 중세 시대가 5 세기에서 15 세기까지라고 하니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것입니 다. 15 세기에 유럽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천 년을잠자고 있던 창의성이 어떻게 갑자기 꽃 피울 수 있었을까요? 앞서 이야기한 많은 발명은 이탈리아 피렌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특정한 시 기에 어느 한지역에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수많은발견이 이루어졌다는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습니 다. 이번 장에서는 르네상스 시기의 발명이 가지는 몇 가지 특성과 원근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림 을 그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원근법이 대단한 발견이라고 할 만한가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근법은공간 표현 기법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인간의 시점이 이동한르네상스시대로 한번 돌아가 보겠습니다. 10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 작한〈최후의 만찬〉입니다. 밀라노에 있 는 수도원 식당 벽에 그려진 벽화로 원 래는 스포르차 가문의 묘실 중앙 벽을 장식하기 위해 의뢰된 것이었습니다. 레 오나르도 다 빈치가 1495년경에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추정됨니디-. 이 작품 ♦ 다 빈치,〈최후의 만찬〉. 1495-1498년 을 제작하는 데 3년이나 걸려 그 이유에 대한 추측과 이야기가 많이 생겼습니다. 다 빈치가 로마 군인에게 예수를 넘긴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 해 오래 고심하였다는 이야기,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다 빈치가 예수의 마지막 식탁에 오를음식을 오 랫동안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 작품은 예수가 자신이 곧 죽는다고 제자들에게 알리는순간을 묘사한 것입니다. 여기 에 있는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의 왼쪽에는 요한과 베드로,그리고 유다가 있습니다. 유다는 한손에는 지갑을 움켜지고 다른 손으로는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손을 뻗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계획을 예수가 알고 있는 것 에 놀란듯고개를돌리고 있습니다. 유다의 뒤에 베드로는 예수가죽을 것이라는 이야기에 화가난모습 입니다. 예수의 옆에 요한은고개를 비스듬히 젖히고 숙인 채 슬픈표정을하고 있습니다. 12 명의 제자들 은 놀라고 당황한 감정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작품이 많이 손상되어 이미지를 선 명하게 볼수 없지만분명 이 장면은 예수의 죽음을 예언하는극적인 순간을표현하였습니다. 작품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 시각적으로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느낌입니다. 작품 위에 자를 대고 선을 그리듯 설명에 따라 눈으로 선을 그어보기 바랍니다. 예수의 눈과 제자들의 머리를 따라 작품 중앙 에 가로로 선을 그립니다. 그리고 벽과 천정에 만들어진 선을 따라 이으면 모두 예수의 머리 위 한 점으 로 수렴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선과 만나는 수직과 수평의 직선을 그리고 나면 평면 위에 쉽게 3 차 원 공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 화면의 하단에도 소실점으로 모인 선들을 그려보기 바랍니다. 인물 과 식탁 때문에 벽의 선들이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응용력을 발휘하면 쉽 게 그릴 수 있습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은 무엇보다도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1 점 소실점의 원근법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배경에는 검은 사각형 4 개가 점점 작아지면서 원근법을 더욱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뒤로 보이는 창문 3 개는 완전히 열려 있어 어두운 실내와 대비되는 밝 은 야외 풍경을 보여 줍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신의 완전한 질서 속에서 인간의 흥분과 혼란까지 11 조화롭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완벽한공간& 재현할 수 있는 원근법은 어떻게 발명되 었을까요? 원근법은 거리감 있는 현실 공간을 기하학적 인 방법에 의한 도식 적 구성법으로 평면 위에 재현하는 기술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 기에서 기하학적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평 행선 위에서 규칙적으로 평면을 분할해 나가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초기 르네상스 작품 가운데 원근법의 효과를 보여 주는 작품은 마사 초의〈성 삼위일체〉입니다. 예수가매달려 있는십자가아래 성모마 리아와 요한이 서 있고 기둥 바깥쪽에는 벽화의 기증자들이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인물들은 입체적으로 느껴지 지는 않지만 기둥의 밖에 위치함으로써 십자가가 드리워 있는 공간 이 움푹 들어간 듯한 느낌을 줍니다. 중세 시대 사람들이 벽에 그려 진 마사초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면 어 떤 느낌 이 들었을까요? 15세기 피렌체의 문화를 중흥시킨 메디치 가는 플라톤과 고대 ♦ 마사초,〈성 삼위일체〉,1427~1428년 플라톤주의자들의 문헌을 번역하였고 그로 인해 기하학을 중시하 는 플라톤의 사상이 전파되었습니다. 원근법은 고대 사상이 부활하며 공간을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접 근하며 발명하였습니다. 이제 화가들은 계산을통해 보다 정확하게 공간속사물들을 하나의 점으로 수 렴하도록 배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정밀한 투시도를 만들기 위해 도구를 이용하였습 니다. 항해를 위해 나침반을 이용하고 측정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직각자와 컴퍼스 등 다양한 측량 도 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릴 때 관찰자와 대상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해야 합니다. 이는 르네상스를대 표하는 화가 뒤러가 쓴《회화론》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리고자 하는 장면의 가운데에 가로로 가상의 선을 긋고,그 선과 화가의 눈을 마찬가지로 가상의 피라미드로 연결합니다. 그 다음 화 가와 대상 사이에 베일을 설치하고,베일을 통해 대상을 관찰하여 두 선 사이를 지나가는 거리를 측정 합니다. 원근법의 기하학적인 원리는 가상의 피라미드 안에 관찰자와 대상의 거리와 각도를 비례하여 그리는 과학적인 이해를 통해 발명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눈앞에 펼쳐진 풍경뿐만 아니라 이를 지각 하고 인식하는 시각에 대한관심이 원근법 출현에 기초가 된 것입니다. 원근법을통해 볼수 있는르네상스 시대의 창조적 태도를세 가지로 정리할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를 관찰하는 고정된 시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12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신학이나 역사 혹은 신화가 아닌 경험주의적인 태도를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는 근대 과학적 합 리주의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세상을 보는새로운 방법이 창 조되었습니다. 원근법에서 볼수 있듯이 기하학에 대한 이해가광학으로 이어지고,미술의 표현으로 발 전하였습니다. 3차원을2차원 위에 옮겨 놓은완전히 새로운 기술이 완성되 었습니다. 르네상스는 다시 탄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흔히 중세 이후의 문화적인 부흥기를 일컫는 용어로사용합니다. 이 시기에 가장큰의미는 인간의 정신이 새롭게 탄생하였다는것입니다. 인본주의 사상의 발전을 이 루었던 르네상스는신 중심 의 세 계관을 인간의 시 점 으로 옮겨 놓았습니 다. 그리고 이러한시 점 이동은 인간이 물리적인 공간을 측량하고 계산하여 평면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따라서 원근법은 아마도 르네상스 시기의 인본주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하나의 발견이라 할수있습니다. 이 작품은 15 세기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멜랑콜리아 I 〉입니다. 이 작품에는 날개를 단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이 보입니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손에는 컴퍼스를 잡고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 고 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원구,육면체 같은 기하학적 도형 외에도 톱,대패, 망치 같은노동과관련 된 도구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의 뒤에 있는 건물의 벽에는 시계와 저울,종,그리고 마방진이 걸려 있 습니다. 정사각형의 마방진은 가로,세로, 대각 선의 합이 34로 일정한숫자의 배열을 만드는 것 입니다. 그리고 멀리에서 한 줄기 빛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 앞의 배너에는 작품의 제목인〈멜 겄^ 랑콜리 아 I〉라고 쓰여 있습니 다.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원리와 물 리적,물질적인 사물들을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 였습니다.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철학적 고 민을 하였으며,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기술을 발 전시켰습니다. 르네상스 시기에 인간의 사고가 눈뜨기 시 작했다는 점을 상기 해 볼 필요가 있습 니다. 학문이 시작할 때는 과학,수학,예술,철학 등 학문을 구별하는 일이 무의미하였는지 모르 ♦ 뒤러,〈멜랑콜리아 I〉.1먀4년 13 겠습니다. 하지만 전문화를추구해 온 현대 사회에서는 다시 학문의 경계를 넘기 위해 노력힙 니다. 어 쩌면 이는 스스포 만들어 놓은 덫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창의적 인 사람이 되고 싶다 면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즉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창을 만들고자 했던 예술가들을 생 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학문은 따로 놓인 창이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서로 연결되어 다양한 무지개 빛을 비추는 창을 통해 볼 때 자신만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자신만의 관점으 로세상을새롭게 그려 보기 바랍니다. 14

Use Quizgecko on...
Browser
Brow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