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의 삶에 대한 주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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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베르그송의 철학적 글로, 삶에 대한 주의, 지각, 인식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베르그송은 삶의 주의로부터 벗어나, 정신의 주의를 통해 과거 경험의 세부 사항들을 보존하는 탁월한 기억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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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불연속적인 자극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상호 침투하는 혼돈의 장이지만, 우리가 이러한 자극과 혼 돈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견고한 질서를 갖춘 일상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을 감각하지 않아야 삶 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변화하는 것을 고정된 것으로, 동체를...
세계는 불연속적인 자극들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상호 침투하는 혼돈의 장이지만, 우리가 이러한 자극과 혼 돈을 경험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견고한 질서를 갖춘 일상 세계를 위협하는 것들을 감각하지 않아야 삶 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 변화하는 것을 고정된 것으로, 동체를 부동 체로 바꾸어 수용한다. 베르그송은 이러한 태도를 낳는 정신의 성향을 가리켜 ‘삶에의 주의’라 표현한다. ‘주 의’란 분산된 정신을 한데 모아 균형을 제공하는 것으로, ‘삶에의 주의’는 환경에 적응하고자 정신을 집중하여 신체에 유입되는 정보를 토대로 적절한 행위를 선택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삶에의 주의’를 통해 정신이 조밀하게 응집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를 명료하게 지각하거나 위협에 대처하는 등 현재 상황의 요구에 알맞게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에의 주의’는 인간과 같은 고등 생명체는 물론이고 아메바와 같은 하등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들이 가진 생존 본능이다. 인간 존재가 ‘삶에의 주의’에 의거하여 전체가 아닌 필요한 부분만을 취사선택하는 면모는 여러 영역에서 확인된다. 그 대표적인 예는 지각과 인식이다. 먼저 감각 기관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지각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그것이 붉은색이라거나 노란색이라고 지각하지만, 사실상 색조들은 분리 불가능하게 얽 혀 변화무쌍하게 달라진다. 또한 우리는 사물을 보통 ㉠범주화하여 지각한다. 서로 다른 대상을 같은 부류나 범위로 묶어 내는 것이다. 눈앞의 컵은 다른 컵과는 다른 그 컵만의 미묘한 뉘앙스1)와 고유한 질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개별자가 아닌 컵이라는 일반적 대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우리의 지각은 생존 및 삶의 편의를 위해 대상의 고유한 질적 측면들을 무시해 버린다. 이성적 사유를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인식 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추상화와 ㉢일반화를 통해 개념을 만들어 내며,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을 토대 로 무언가를 사유하고 추론하며 판단한다. 추상화란 여러 개체들 사이에서 공통 속성을 추려 내는 작업을 일 컫는 것으로서, 이 과정에서 개체들의 차이와 특이성은 배제되고 만다. 일반화란 추상화를 통해 추려 낸 공통 속성을 공유하는 유개념을 만든 후 대상들을 그 유개념에 끼워 맞추는 작업을 일컫는 것으로서, 이때 유개념 에 맞게 그 속성이 임의로 보태지기도 하고 제거되기도 하는 식으로 변형이 이루어진다. 즉, 추상화와 일반화 등 보편 법칙을 발견하는 수단으로 여겨져 온 논증 체계가 절대적인 지식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베르 그송은 인간의 지각과 인식이 유용성의 논리에 복속되어 보다 용이하게 사물들을 분류하고 관리하고자 왜곡 을 감행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그송은 우리가 지각과 인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생명체 중에서도 고등한 존재자인 인간에게는 ‘삶에의 주의’와는 다른, ‘정신의 주의’가 존재한다. 우연히 마주 친 어떤 대상에 자극받아 부지불식간에 무의식 속으로 침잠하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때 정신은 쓸모 없다는 이유로 억제되어 있던 심층의 기억 더미를 돌면서 묻혀 있는 기억을 포착한다. 그 결과, 일반화되어 존재하던 대상이 개별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때 ‘정신의 주의’는 ‘삶에의 주의’와 대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그송은 ‘정신의 주의’를 통해 소환되는 기억은 반복을 통해 학습된 기억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은 반복 불가능하고 우발적이며 무용한 기억으로서, 과거 경험의 세부 사항들을 보존하고 있어 ‘탁월한 기억’이라고 말한다. 베르그송은 인간에게는 ‘삶에의 주의’로부터 무익한 것들을 향해 ‘주의의 전향’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노력 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주의의 전향’을 끊임없이 시도해 왔고 시도해야 할 인물들로 철학자와 예술 가를 꼽는다. 적어도 철학과 예술은 ‘삶에의 주의’로 인한 불충분한 경험적 지각과 인식에 만족하지 않고 현상 의 본모습을 온전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지난 수 세기 동안 코로, 터너 등과 같은 예 술가들이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하는 데 몰두하는 태도로부터 초탈하려고 부단히 노력함으로써 예술가의 역할 을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예술가들은 시각 기관에 의해 포착된 상(像) 이면의 모습을, 청각 기관에 의해 붙들린 음향 너머의 소리를 포착하고자 노력함으로써 ‘삶에의 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의 지각 기능을 확 장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예술가들이 발견해 낸 세계의 모습은 허구가 아니라, 우리가 접하 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에서 배제된 것들로, 이는 ‘주의의 전향’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노력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베르그송이 자신의 예술론에서 예술가들은 탁월한 관찰자를 넘어선 Ⓐ탁월한 실천자 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어휘 풀이] 1) 뉘앙스: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